초등 수학, 문제를 많이 풀기보다 중요한 것
학교 수업과 ‘학습소화시간’을 제대로 활용하는 방법
수학은 하루에 얼마나 공부해야 할까요?
하루의 모든 일정을 마치고 아이가 스스로 공부하는 시간은 얼마나 되나요? 그중 수학을 공부하는 시간은 어느 정도인가요?
학원에 다녀오고, 밀린 학습지나 패드 학습을 하고, 숙제도 해야 합니다. 중요하다는 독서도 빼놓기 어렵지요. 저녁을 먹고 씻고 나면 어느새 하루가 다 지나갑니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것을 배우면서도 정작 빠져 있는 시간이 하나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학습소화시간’이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아이에게 계속 새로운 것을 넣어주는 데에는 익숙하지만, 오늘 배운 것을 다시 떠올리고 자기 생각으로 정리하는 시간은 충분히 주고 있을까요?
수많은 인풋이 있었다면 그것을 정리하고 기억하고,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시간도 필요합니다.
오늘은 수학 공부 시간을 무작정 늘리지 않으면서도 배운 것을 더 깊게 이해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18년 동안 초등학교 교실에서 수학을 가르치며 본 모습
저는 18년차 초등교사입니다.
아이들에게 1인 1교구를 충분히 제공하기 어려운 상황이 아쉬워 코딩 지식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시작해 직접 디지털 수학 교구까지 만들 만큼 수학 수업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수학 시간이 되면 아이들에게 자꾸 ‘딴지’를 겁니다.
왜냐하면 교실에서 이런 모습을 정말 자주 보기 때문입니다.
- 개념을 설명하면 이미 알고 있다는 표정으로 듣는 아이가 있습니다.
- 반대로 ‘나는 원래 수학을 못해’라는 생각으로 설명을 듣기도 전에 포기하는 아이도 있습니다.
- 수학 문제나 수학 익힘책을 아주 빠르게 풀어내는 아이가 있는 반면, 함께 해결한 문제조차 빈칸으로 남겨두는 아이도 있습니다.
- 단원평가를 보면 거의 모든 문제를 맞히는 아이와 많은 문제에서 어려움을 겪는 아이로 나뉩니다.
그런데 오랫동안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한 가지 의문이 생겼습니다.
문제를 아주 빨리 풀고 거의 다 맞히는 아이는 정말 수학을 잘하고 있는 걸까요?
물론 계산이 정확하고 문제 해결 경험이 많은 것은 중요한 능력입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그 아이가 수학적 개념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고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저는 가끔 아이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딴지를 겁니다.
“저 점을 지나면서 이 직선에 평행한 직선은 정말 하나밖에 없을까?”
또는 이렇게 묻습니다.
“14×3하고 3×14는 답이 똑같은데, 정말 같은 상황이라고 생각해? 그림으로 한번 나타내볼래?”
평소 문제를 빠르게 풀던 아이도 이런 질문을 받으면 잠시 멈춥니다. 눈빛이 흔들리는 순간이 있습니다.
저는 바로 그때부터 아이가 진짜 수학을 생각하기 시작한다고 느낍니다.
처음에는 생각하는 것을 귀찮아하던 아이들도 이런 질문을 반복해서 경험하면 달라집니다.
나중에는 오히려 “선생님, 또요! 다른 문제도 내주세요!”라고 합니다.
정답을 맞히는 재미와는 조금 다른 생각하는 재미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이미 알아요”가 수학 공부에서 위험할 수 있는 이유
저는 초등학생에게 무조건적인 선행학습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선행학습 자체를 무조건 나쁘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아이에 따라 더 깊은 내용을 궁금해하고 스스로 앞선 내용을 탐구하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제가 걱정하는 것은 ‘이미 배웠다’는 생각 때문에 지금의 수학 수업에서 생각할 기회를 잃는 것 입니다.
학원이나 학습 프로그램에서 이미 접한 내용이 나오면 학교 수업을 쉽게 느낄 수 있습니다.
“이거 알아요.”
“이거 해봤어요.”
문제까지 맞히면 정말 다 이해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수학의 개념은 설명을 한 번 들었다고 곧바로 자기 것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직접 해보고, 그림으로 나타내보고, 자신의 말로 설명하고, 다른 상황에도 적용해보면서 머릿속에서 관계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그 과정 없이 문제를 풀고 정답을 맞혔다는 이유만으로 ‘아는 것. 끝.’이라고 넘어가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습니다.
초등학교에서는 쉽게 느껴졌던 작은 개념의 빈틈이 나눗셈과 분수처럼 관계를 깊게 이해해야 하는 내용을 만났을 때 다시 드러나기도 합니다.
이후 중·고등학교 수학에서 수가 문자로 바뀌고 더욱 추상적인 관계를 다루기 시작하면 단순히 풀이 방법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순간이 옵니다.
그래서 저는 아이가 얼마나 앞서가고 있는지보다 지금 배우고 있는 수학을 얼마나 자기 것으로 만들고 있는지 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학교 수학은 한 번 배우고 끝나는 구조가 아닙니다
우리나라 수학 교육과정의 내용은 이전에 배운 개념을 바탕으로 다음 내용을 배우고, 이후 다시 확장하는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낮은 학년에서 수와 덧셈·뺄셈을 충분히 경험하면 이후 더 큰 수의 연산으로 확장됩니다. 곱셈은 나눗셈과 연결되고, 자연수에서 경험한 수의 관계는 분수와 소수로 넓어집니다.
도형이나 측정도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같은 내용을 ‘두 번 보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현재 발달과 이해 수준에 맞게 개념을 충분히 경험하고 다음 학습으로 연결하는 것 입니다.
학교에서 보내는 수학 시간도 결코 작은 시간이 아닙니다.
그 시간을 제대로 활용하고, 배운 것을 짧게라도 다시 소화할 수 있다면 집에서 해야 하는 공부의 양을 무조건 늘리지 않아도 됩니다.
제가 말하는 ‘학습소화시간’이란?
거창한 공부법은 아닙니다.
오늘 배운 것을 내 머릿속에서 다시 꺼내보는 시간 입니다.
책을 덮고 오늘 배운 내용을 말해봐도 좋습니다. 빈 종이에 그림을 그려도 됩니다. 부모님에게 설명해도 되고, 혼잣말을 해도 됩니다.
예를 들어 오늘 학교에서 1m=100cm를 배웠다면 문제집을 바로 펴기 전에 이렇게 물어볼 수 있습니다.
“오늘 길이에 대해서 새롭게 알게 된 게 뭐야?”
아이가 “100cm가 1m야.”라고 대답했다면 한 번 더 물어볼 수 있습니다.
“그럼 왜 1m라는 단위가 필요할까?”
“집에서 1m 정도 되는 물건을 찾아볼까?”
배운 지식을 다시 떠올리고 다른 상황과 연결하면서 아이의 머릿속에서 개념이 조금씩 자리를 잡습니다.
모든 과목을 매일 길게 복습할 필요도 없습니다.
국어, 도덕, 음악, 미술, 체육처럼 그날 무엇을 했는지 떠올리는 것만으로 충분한 날도 있습니다.
수학·사회·과학처럼 한 차시에서 중요한 개념을 배웠다면 오늘 내가 새롭게 알게 된 것이 무엇인지 5~10분 정도 말이나 글, 그림으로 꺼내보는 것 을 권합니다.
하루에 한두 과목만 해도 충분합니다.
제가 이것을 ‘복습시간’보다 학습소화시간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배운 것을 다시 많이 공부하는 시간이 아니라, 오늘 들어온 지식을 내 것으로 소화하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수학 문제는 ‘나를 가르치듯이’ 풀어보세요
개념을 다시 떠올렸다면 문제도 조금 풀어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문제 수를 무조건 늘리는 것보다 적은 문제라도 설명하면서 해결하는 경험을 권합니다.
특히 문장제 문제를 만났을 때 아이에게 이런 질문을 해보세요.
- 문제에서 주어진 것은 무엇이지?
- 무엇을 구해야 하지?
- 어떤 정보가 필요할까?
- 왜 이 계산을 해야 할까?
- 답은 어떤 형태로 써야 할까?
- 다른 방법으로도 해결할 수 있을까?
아이에게 정답을 알려주는 질문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들여다보게 하는 질문입니다.
예를 들어 아이가 문제를 풀면서 “여기에는 35가 있고 18이 더 들어왔으니까 덧셈을 해야 해.”라고 설명한다면 단순히 식을 쓰는 것보다 아이의 생각을 훨씬 잘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설명하다가 스스로 “어? 아닌가?”라고 멈추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것도 아주 좋은 순간입니다. 자기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헷갈리는지 스스로 알아차리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문제 30개보다 문제 10개가 더 좋을 수도 있습니다
여기까지 이야기하면 부모님들이 가장 많이 걱정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정말 이 정도만 공부해도 될까요?
원래 연산 문제집 세 장 풀고 사고력 수학도 한 장씩 했는데요.”
문제의 개수만으로 학습의 질을 판단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늘 학교에서 배운 개념을 이해했고, 그것을 자기 말로 설명해봤고, 몇 가지 문제를 통해 제대로 적용할 수 있는지 확인했다면 의미 있는 공부를 한 것입니다.
물론 반복 연습이 필요한 내용도 있습니다. 기초적인 계산을 익숙하게 수행하기 위해 어느 정도 연습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많이 풀수록 무조건 좋다’는 공식은 없습니다.
특히 아이가 이미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내용을 지나치게 반복하면서 수학 자체에 흥미를 잃는다면 얻는 것과 잃는 것을 함께 생각해봐야 합니다.
공부를 마쳤다면 놀아도 됩니다
오늘 학교에서 배운 것을 충분히 소화했고 필요한 연습도 했다면 저는 남은 시간에 책을 읽는 것도 좋고, 노는 것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아이의 발달에는 수학만 필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책을 읽으며 문해력을 키우는 시간도 필요하고, 친구들과 뛰어놀며 신체적·사회적 능력을 기르는 시간도 필요합니다.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듣고 무언가를 만드는 경험도 중요합니다.
수학을 잘하기 위해 아이의 모든 시간을 수학 문제로 채울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다양한 경험이 나중에 수학적인 상황을 이해하고 새로운 문제를 해결하는 배경이 되기도 합니다.
오늘부터 이렇게 질문해보세요
아이에게 수학 공부를 확인할 때 우리는 쉽게 이렇게 묻습니다.
“오늘 수학 몇 문제 풀었어?”
오늘부터 질문을 조금 바꿔보면 어떨까요?
“오늘 수학 시간에 새롭게 알게 된 게 뭐야?”
그리고 하나 더 물어보세요.
“그걸 엄마(아빠)한테 한번 설명해줄래?”
아이가 설명하지 못한다고 해서 바로 걱정하거나 다시 가르칠 필요는 없습니다.
“어디까지는 기억나?”
“그림으로 그려볼까?”
정도로 시작해도 됩니다.
이 짧은 시간이 아이에게는 오늘의 배움을 다시 꺼내고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학습소화시간이 됩니다.
초등 수학에서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세 가지
이미 배웠더라도 ‘아는 문제’라고 넘기지 말고 왜 그런지 다시 생각해봅니다.
오늘 배운 것을 책을 보지 않고 말하거나, 쓰거나, 그림으로 표현해봅니다.
정답을 맞혔는지만 확인하지 말고 왜 그렇게 해결했는지를 자신의 말로 표현합니다.
이 세 가지를 충분히 했다면 남은 시간에는 책을 읽고, 놀고, 다른 것을 경험해도 좋습니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언제나 더 많은 공부가 아니라 지금 배우고 있는 것을 제대로 이해할 시간 일 수도 있으니까요.
수학 문제를 얼마나 많이 풀었는지만 확인하기보다 아이가 오늘 어떤 생각을 했는지 한번 물어봐 주세요.
그 질문 하나에서 생각하는 수학이 시작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