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역샘의 수학 코칭

엄마표 수학이 어려운 이유

피아제와 브루너에게서 찾은 초등수학 공부법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집에서 수학을 직접 가르쳐보려는 부모님이 많습니다.

처음에는 생각보다 어렵지 않습니다. 간단한 덧셈도 알려주고, 문제집도 함께 풀어봅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상해집니다.

분명 쉽게 설명했다고 생각했는데 아이가 이해하지 못합니다. 같은 것을 몇 번 설명하다 보면 부모의 목소리가 조금씩 커집니다.

“아까 설명했잖아.”
“이게 왜 어려워?”
“여기서 이것만 더하면 되잖아.”

아이도 답답합니다.

결국 수학 공부를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부모와 아이 모두 지쳐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단순히 ‘우리 아이가 수학을 어려워해서’라고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어쩌면 아이와 어른이 수학을 이해하고 표현하는 방식 자체가 다르기 때문 일 수도 있습니다.

아이에게 수학을 설명하는 부모와 아이의 서로 다른 생각을 표현한 그림
어른에게 쉬운 설명이 아이에게도 쉬운 설명인 것은 아닙니다.

어른에게 쉬운 것이 아이에게도 쉬울까요?

부모가 아이에게 수학을 가르칠 때 가장 먼저 기억했으면 하는 것이 있습니다.

아이는 단순히 지식이 적은 작은 어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른은 오랫동안 숫자와 기호를 사용해왔습니다.

그래서 숫자를 보는 순간 그 숫자가 나타내는 양이나 관계를 굳이 실제 물건으로 확인하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른에게 5 + 3 = 8이라는 식은 너무나 자연스럽습니다.

그런데 수를 처음 배우는 아이에게 ‘5’, ‘+’, ‘3’, ‘=’, ‘8’은 모두 추상적인 기호입니다.

우리가 이미 익숙해진 기호만으로 아이에게 설명하면서 “이것이 왜 이해가 안 되지?”라고 생각한다면 서로 답답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피아제의 인지발달 이론으로 생각해보기

스위스의 심리학자 장 피아제(Jean Piaget)는 아이들의 사고가 성장하면서 질적으로 변화한다고 보았습니다.

특히 초등학생 시기의 아이들은 실제 사물이나 구체적인 상황을 바탕으로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능력이 발달해가는 시기에 있습니다.

반면 성인은 오랜 경험을 통해 눈앞에 실제 물건이 없어도 숫자와 기호, 언어만으로 관계를 생각하는 데 익숙합니다.

여기에서 엄마표 수학의 어려움이 생길 수 있습니다.

부모는 이미 머릿속에서 추상적으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결과와 기호 중심으로 설명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아이에게는 그 기호가 의미하는 것을 직접 보고, 움직이고, 그려보는 과정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물론 모든 아이가 똑같은 나이에 똑같은 방식으로 사고하는 것은 아닙니다.

피아제의 발달 단계를 “몇 살이면 반드시 여기까지 할 수 있다”는 식으로 딱 잘라 적용할 필요도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아이가 이해하지 못할 때 ‘왜 이것도 모르지?’가 아니라 ‘지금 이 아이에게 너무 추상적으로 설명하고 있지는 않은가?’ 를 먼저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구체적인 경험에서 그림과 수학 기호로 이동하는 초등학생의 수학 학습 과정을 표현한 그림
초등 수학에서는 구체적인 경험과 시각적인 표현이 중요한 다리가 됩니다.

브루너의 EIS 이론으로 보면 더 쉽게 이해됩니다

미국의 심리학자 제롬 브루너(Jerome Bruner)는 사람이 지식을 표현하는 방식을 크게 세 가지로 설명했습니다.

수학 교육에서는 흔히 EIS 표현 양식이라고 부릅니다.

E — Enactive : 활동적 표현

실제 사물이나 교구를 직접 만지고 움직이며 이해하는 단계입니다. 아이가 손으로 해보는 경험이라고 생각하면 쉽습니다.

I — Iconic : 영상적 표현

실제 물건 대신 그림, 사진, 수 모형, 도식과 같은 시각적인 표현을 이용하여 생각하는 단계입니다.

S — Symbolic : 상징적 표현

숫자와 수학 기호, 식처럼 추상적인 기호를 이용하여 수학적 관계를 표현하는 단계입니다.

어려운 말처럼 보이지만 실제 수학 공부에 적용하면 아주 간단합니다.

예를 들어 5 + 3을 처음 배운다면

아이에게 처음부터 아래 식을 보여줄 수도 있습니다.

5 + 3 = 8

하지만 아이에게는 그 전에 5개와 3개가 합쳐지는 경험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1. 실제로 움직여보기

토마토가 5개 있다고 생각해봅시다. 여기에 토마토 3개를 더 놓습니다.

아이가 직접 하나씩 옮겨보고 두 무리가 하나로 합쳐지는 것을 경험합니다.

연결큐브나 단추, 바둑돌처럼 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물건을 이용해도 됩니다.

2. 그림이나 모형으로 나타내보기

실제 물건을 충분히 다뤘다면 이번에는 종이에 동그라미를 그리거나 수 모형과 같은 시각적인 표현으로 나타내봅니다.

● ● ● ● ●    +    ● ● ●

실제 물건이 없어도 그림을 보며 5와 3이 합쳐지는 상황을 떠올릴 수 있게 됩니다.

3. 마지막에 숫자와 기호로 표현하기

그리고 마지막에 그 경험을 수학의 언어로 표현합니다.

5 + 3 = 8

이제 이 식은 아이에게 단순히 외워야 할 기호가 아니라 자신이 직접 경험한 상황을 간단하게 나타낸 표현이 됩니다.

다섯 개와 세 개의 사물을 합쳐 여덟 개가 되는 과정을 교구와 그림, 수식으로 표현한 예시
실제로 해보기 → 그림과 모형으로 표현하기 → 수학 기호로 나타내기

교구는 정답을 알려주는 도구가 아닙니다

여기에서 한 가지 주의할 점도 있습니다.

교구를 사용한다고 해서 저절로 수학 개념을 이해하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아이가 교구를 움직이는 동안 무엇을 보고 무엇을 생각하는가입니다.

그래서 교구를 사용할 때는 부모가 방법을 먼저 보여주고 그대로 따라 하게 하는 것보다 이런 질문을 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교구의 목적은 아이 대신 답을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수학적 관계를 아이가 보고 생각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 입니다.

디지털 수학 교구도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꼭 실물 교구만 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실제 물건을 충분히 조작해본 다음에는 수 모형이나 수 구슬 같은 디지털 수학 교구로 같은 상황을 다시 표현해볼 수도 있습니다.

화면에서 수를 만들고, 나누고, 옮겨보면서 수량의 변화와 관계를 눈으로 확인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실물 교구가 좋은가, 디지털 교구가 좋은가’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아이가 숫자와 기호만 외우기 전에 수량의 변화와 관계를 직접 경험하고 표현해보는가입니다.

실제 물건이 더 적합한 상황에서는 실제 물건을 사용하고, 여러 번 빠르게 만들어보고 비교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디지털 교구를 활용할 수도 있습니다.

도구보다 중요한 것은 아이의 생각이 구체적인 경험에서 수학적인 표현으로 이동하는 과정입니다.

그렇다면 엄마표 수학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론의 이름을 외울 필요는 없습니다.

집에서 아이와 수학을 공부할 때 몇 가지 원칙만 기억해도 충분합니다.

1. 새로운 개념을 만나자마자 문제집부터 펴지 않기

처음 배우는 내용이라면 실제 물건이나 그림, 간단한 상황을 통해 개념을 경험할 시간을 먼저 주세요.

2. 아이가 직접 해볼 시간을 주기

어른이 빠르게 보여주는 것보다 아이가 직접 놓아보고, 옮겨보고, 틀려보는 경험이 중요합니다.

3. 틀렸을 때 바로 풀이 방법을 알려주지 않기

“왜 이것도 몰라?” 대신 “어디까지는 알겠어?”라고 물어보세요. 아이가 무엇을 이해했고 어디에서 막혔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4. 교구 → 그림 → 기호로 연결하기

손으로 해본 것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다시 숫자와 식으로 나타내보세요. 서로 다른 표현이 같은 수학적 관계를 나타낸다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5. 몇 문제 풀었는지보다 설명할 수 있는지 확인하기

답을 맞혔다면 “왜 그렇게 했어?”라고 한번 물어보세요. 아이가 자신의 말로 설명할 수 있다면 개념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는지 훨씬 잘 알 수 있습니다.

이런 방법은 저학년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교구를 이용하거나 그림을 그리는 방법을 1~2학년에게만 필요한 공부법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학년이 올라가도 새로운 수학 개념을 처음 만나는 순간에는 구체적인 경험과 시각적인 표현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분수를 처음 배울 때 실제로 전체를 나누어보는 경험, 소수를 수직선 위에 나타내보는 경험, 넓이 공식을 배우기 전에 도형을 잘라 옮겨보는 경험도 같은 맥락에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다만 아이가 충분히 이해한 뒤에도 계속 교구에만 의존하는 것이 목표는 아닙니다.

구체적인 경험을 통해 관계를 이해한 뒤 점차 그림과 기호만으로도 생각할 수 있도록 이동해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교구는 목적지가 아니라 추상적인 수학으로 건너가기 위한 다리입니다.

아이가 이해하지 못할 때 설명을 더 많이 하기 전에

아이와 수학을 공부하다 보면 부모에게는 너무 당연한데 아이는 이해하지 못하는 순간이 옵니다.

그때 설명을 더 길게 하는 것이 항상 답은 아닙니다.

잠시 멈추고 이렇게 생각해보세요.

“내가 지금 숫자와 말로만 설명하고 있지는 않을까?”

실제로 한번 해볼 수는 없는지, 그림으로 나타낼 수는 없는지, 아이가 자기 방식으로 설명할 기회를 줄 수는 없는지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부모는 이미 수많은 경험을 거쳐 수학의 기호를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어른입니다.

아이는 지금 그 기호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하나씩 만들어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래서 엄마표 수학에서 중요한 것은 부모가 얼마나 멋지게 설명하느냐보다 아이가 직접 생각할 수 있는 경험을 얼마나 만들어주느냐일지도 모릅니다.

수학을 가르치기 전에 아이의 눈높이에서 그 숫자와 기호를 한번 바라봐 주세요.

어른에게는 너무나 당연했던 5 + 3 = 8도 아이에게는 직접 경험하고 발견해야 할 새로운 수학이니까요.